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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개발사례

롤모델

[She Did It] #96 정가영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조회수536 작성일2024.07.25

시즌 5

단백질 구조 연구로 신약 개발의 

혁신을 선도하다

성균관대 약학대학 정가영 교수

 

박사 졸업 후 3년 만에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며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 

‘노벨상 수상자와 공동 연구자’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차세대 과학자로 등극하다. 

국외의 굵직한 러브콜을 뒤로하고 2012년 귀국해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법을 시도하며 신호전달 분자 구조에서 독립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정가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97학번으로 동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후 위스콘신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 심장 세포에서 GPCR(G단백질 결합 수용체) 중 엔도텔리(endothelin) 수용체의 기능을 연구하였다. 이후 스탠포드 대학교의 코빌카(Brian Kobilka)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단백질 구조 연구로 2011년 네이처(Nature) 저널에 두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성과로 코빌카 교수가 2012년 노벨화학상 수상하는 데 기여했다.  

 

2012년 성균관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정 교수는 GPCR 단백질 신호전달 분자 구조 연구를 질량 분석 기법을 통해 연구하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외 과학자들과 다채로운 협업을 통해 2019년에는 셀(Cell) 저널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리며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하였다.

 

 

Q. 약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 생활은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까진 영어에 재미를 느껴 통역가나 번역가를 꿈꿨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수학과나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성으로서 이과 계열에서 진출할 만한 분야가 의대, 약대, 간호대, 치대 정도였습니다. 연구를 할 수 있는 약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처음부터 약사가 아닌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약학은 융합 학문이라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었고, 저는 그 점이 좋았어요. 덕분에 지금도 새로운 걸 배울 때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은 입시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마냥 좋았습니다. 과학적인 것보다는 MT, 동아리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입시 공부로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즐겼어요. 친구들과 3학년 여름방학 때 한 달간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돌며 재미있게 보낸 게 기억에 남습니다.

 

 

Q. 위신콘신 주립대학에서 분자세포약리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으셨는데요.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고등학교 때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씨가 유학을 가서 파란 잔디밭에 앉아 책을 보며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유학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 같아요. 석사 학위를 하면서 연구가 내 적성에 맞다는 것을 확인했고, 박사는 좀 더 넓은 세상에서 해 보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학부 때 한 교수님께서 수업시간마다 위스콘신 주립대학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여기는 천국이라며 자랑을 하셨어요. 아름답고 재밌는 곳일 거라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막상 가보니 10월부터 5월까지 겨울이었죠. 교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진은 다 여름 사진이었던 거예요. 겨울이 시작되자 너무 춥고 눈만 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정보가 넘치지만 그 때만 해도 교수님 사진만 믿었거든요(웃음). 

 

위스콘신 주립대학교의 박사 학위 기준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좋은 논문’이 아닌 지도 교수들이 학생이 연구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좋은 논문이 없어도 졸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실적만을 따지지 않고 학생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실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기다려주었습니다.

 

"위스콘신 주립대학교는 박사 학위의 기준이 ‘좋은 논문’이 아니었어요. 

지도 교수들이 학생이 연구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좋은 논문이 없어도 졸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실적이 좋으면 좋지만, 실적만을 따지지 않고 학생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실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기다려주었습니다."

 

 

Q. 박사후 과정을 수행하며 GPCR 구조 연구로 분야를 전환하셨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박사 과정 때 쥐의 심장에서 호르몬이 일으키는 신호전달 과정을 연구했으며, 그 수용체가 GPCR의 일종이었습니다. 박사 졸업 후에는 동물 전체에서 GPCR이 심장에 작동하는 원리를 연구하고 싶었고, GPCR 유전자 변형 쥐 연구로 유명한 코빌카 교수님 연구실에 포닥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교수님은 GPCR 구조에 관한 연구로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셨더라고요.

 

다음 해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교수님의 관심사가 구조 연구로 완전히 옮겨졌더군요. 처음 1년 동안 동물실험 연구를 진행했지만 교수님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도 교수가 관심 없는 연구는 성공할 수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죠. 1년 뒤에 교수님이 구조 연구를 제안하셨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의지라기보다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Q. 포닥 2년차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불안하진 않으셨나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구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교수님은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답하셨습니다. 의학박사인 코빌카 교수님 역시 구조 연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제안해 주신 구조 연구 프로젝트는 샌디에고에 있는 다른 연구실에 가서 배워와야 하는 것이었어요. 질량 분석기를 사용한 구조 연구 기법은 학계로 가든 산업체로 가든 나중에 유용할 것이라며 배워두면 좋을 거라고 하셔서 네, 하고 갔습니다. 해보니까 재밌었고 운이 좋아 성과도 금방 나왔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도전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합니다. 제가 하고픈 것에 대해 서포트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주시고, 선택지를 주셨거든요. 저 역시 연구실 학생들에게 다른 연구실과의 협업을 장려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새로운 기법을 배워오기도 합니다. 교수님이 저를 다른 연구실에 보내 새로운 기법을 배우게 해주신 것처럼요.

 

Q. 귀국 후 국내에서의 연구 세팅과 진행 과정은 어떠셨나요?

 


 

국내에 들어와서 보니, 질량분석으로 구조를 연구하는 연구실이 거의 없었습니다. 장비 셋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구실 학생들이 열심히 연구를 수행하여 기틀을 잡을 수 있었어요. 파이펫 하나 제대로 없는 연구실에 들어와 연구에 필요한 것을 밑바닥부터 만들어준 학생들 덕분에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동료 교수님들과 많은 분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지금까지의 연구는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함께 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내에 질량분석으로 구조를 연구하는 연구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연구에 필요한 것을 밑바닥부터 함께 만들어준 학생들 덕분에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또한, 학교 동료 교수님들과 많은 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죠. 

지금까지의 연구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간 결과물입니다."

 

 

Q.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는 않으셨는지요?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사실 장점이 많았습니다. 좋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찾아왔고요. 초임 교수를 이렇게 알아봐 주는 경우는 드물죠. 오히려 지금 더 부담감이 많아졌습니다. 포닥 지도 교수님과 비슷한 연구로 좋은 논문이 나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독립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똑똑한 사람이면 처음부터 독립했겠지만요(웃음). 

지금은 새로운 길을 찾느라 조금 느리게 가는데, 10년 뒤에는 그곳에서 뭔가 이루고 싶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됩니다(웃음).

 

Q. 지난 10년 동안 국내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인들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시나요?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느낀 것은 여성 과학자라고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아이 양육과 관련해서 엄마에게 더 많은 요구가 있어서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특히 교원이나 시니어 연구원의 일은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 힘든 일이 많아 육아 휴직이 제한적일 때가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나 연구 현장에서 만난 여성 과학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임하고 계셔서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합니다.

 

"여성 과학자라고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 순간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이 양육과 관련해서 가정과 일의 병행이 쉽지 많은 않습니다.

특히 교원이나 시니어 연구원의 일은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육아 휴직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때가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나 연구 현장에서 만난 여성 과학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임하고 계셔서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합니다."

 

 

Q. 신약 개발에 있어서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기초 과학 분야 연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응용 과학은 눈 앞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반면, 기초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에요. 당장 산업적 성과는 없을지 모르지만, 세상의 원리를 찾아내면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전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 한 은사님이 “과학자는 인류가 산을 쌓는데, 평생 모래 알갱이 하나 올려놓는 일을 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자갈 하나를 올려놓을 수도 있겠지”라고 하셨어요. 기초 과학 연구는 이 산을 쌓는 데 모래를 올려놓는 기쁨이 있어요.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기쁨이요.

 

 

Q.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다음 세대 

여학생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세요.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고민해 보세요. 그것이 내가 행복하고 주변이 행복하게 되는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만약, 세상의 물리적 이치를 깨닫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과학자의 길이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저 말고 과학자의 길을 가시길 바래요. 과학자의 삶은 꽤나 다이나믹하답니다. 새로운 진리에 먼저 다가가고, 인류가 커다란 산을 쌓는 데 기여하며,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연구 성과를 발표하러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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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 학자들과 협업하고, 새로운 연구 기법을 배우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정가영 교수의 원동력은 바로 연구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일 것이다. 도전에 주저함이 없으며 미지의 길을 탐색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큰 만족을 느끼는 그는 진정한 진리 탐구자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인간적인 소통의 즐거움은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정 교수는 과학이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아름다운 과정임을 일깨워 주었다. 지난 10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데 보람을 느끼는 행복한 연구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