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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개발사례

롤모델

[She Did It] #99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미래융합전략센터 임혜원 소장

조회수711 작성일2024.09.02

융합 연구로 만드는 미래, 그 중심에 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미래융합전략센터 임혜원 소장

 

국내 뇌과학 연구의 선두주자이자 국가 융합정책 전문기관인 미래융합전략센터

첫 여성 소장. 과학과 연구, 정책에 두루 능통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융합 연구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다.

 

임혜원 소장은 서울대 화학교육과(학사), 화학과(석사) 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시카고대에서 신경생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KIST) 에 입사해 신경과학연구단장, 대외협력본부장 등을 지냈고 한국뇌신경과학회장, 한국연구재단 뇌첨단의공학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가기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의 날 대통령표창(2007년), 과학기술포장(2016년) 등을 받았다. 올해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으로 취임, 여성 과학인들의 화합과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Q. 뇌과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작은 신경전달물질이 뇌에서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주관하는 신호로 작용한다는 데 흥미를 느꼈어요. 인간의 뇌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의 시냅스(신경세포 연결 부위) 로 구성된 아주 복잡한 기관입니다. 화학, 약학, 물리학, 공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의 기술이 있어야 연구할 수 있죠. 아직 미지의 영역인 뇌 기능 연구를 위해 많은 첨단 학문 분야가 접목되고 있어요. 뇌과학을 공부하는 동안 화학과 출신이라 신경약물학 분야에서는 도움이 됐지만, 제가 전공한 신경생리학은 뇌의 해부학을 비롯해 전기회로, 측정기기도 다뤄야 해서 공부가 쉽지 않았어요.  

 

 

Q. 주로 어떤 연구를 했나요?

 

우울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조절하는 기전을 연구했어요. 실제 뇌에는 세로토닌이 결합하는 수용체의 종류가 7개 이상으로 매우 복잡해서, 우울증 원인 및 치료제 개발에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관련 기전을 규명하고 그에 맞는 약물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고효율검색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 성과 덕분에 대통령표창, 과학기술포장 등 영광스런 상을 많이 받았어요.

 

 

Q.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연구하는 일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일은 큰 도전이죠. 그만큼 연구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칠 때도 많고요. 반면 기회가 많아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뇌과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 1998년 무렵이에요. 그즈음 뇌연구촉진법이 제정됐고, 세계적으로도 뇌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제 연구도 힘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 연구비 수주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연구책임자로서 연구비를 따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요. 한국연구재단에 뇌·첨단의공학 분야가 신설됐을 때 맡은 단장직과 한국뇌신경과학회 제20대 회장직 모두 도전의 결과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를 연구하다 보면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요. 

그러다 보니 연구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칠 때도 많죠. 

하지만 기회가 많은 블루 오션이라는 장점도 있죠.

처음 연구비 수주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연구비를 따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Q. 올해 여성과학기술인회장에 취임하셨는데요. 소감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 는 올해 31년째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과학기술인 단체예요. 선배 여성과학기술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동안 많은 업적을 이루었고, 저도 앞으로 2년간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자 합니다. ‘확장’을 제 임기 중의 키워드로 삼아 지역, 연령, 분야를 넓혀서 좀 더 성장시키고 싶어요. 특히 차세대 위원회를 만들어 학부생과 석박사생은 물론 포스트닥까지 젊은 여성과학기술인을 지원하고자 해요. KWSE 홈페이지(https://www.kwse.or.kr/kor/main.jsp)에서 다양한 활동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시험을 잘 봤는데, 그때부터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당시 담임선생님이 과학교사여서 과학 성적이 특히 좋았어요. 그렇게 과학과 친해졌지만 특별히 과학자를 꿈꾸지는 않았고, 대학입학시험에서는 국어 성적이 가장 좋았을 정도로 약간 문과적 취향이 있었던 이과생이었던 것 같아요.

 

 

Q. ‘문과적 취향이 있는 이과생’으로서 과학자의 길을 걷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지금 젊은 세대들처럼 저도 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박사과정 때는 제 능력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지도교수님에게 찾아가 학위과정을 포기하겠다고도 했고요. KIST 연구원 시절에는 ‘왜 나는 독창적인 연구를 하지 못할까’라는 자책도 여러 번 했어요. 그럼에도 계속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 단계는 성실성과 끊임없는 관찰력이고요.  

 

"박사과정 때 제 능력에 확신이 없어 학위과정을 포기하려고도 했고,

KIST 연구원 시절에는 ‘왜 나는 독창적인 연구를 하지 못할까’라는 자책도

여러 번 했죠. 그럼에도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건 

호기심 덕분인 것 같아요."

 

 

Q. 연구가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나요?

 

KIST는 서울에 있지만 근무 환경이 매우 자연친화적이어서 산책할 곳이 많아요. 뭔가 잘 안 될 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하곤 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철저히 지키고 있는 습관 중 하나는 일과 가정의 분리예요. 근무 외 시간에는 연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가정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연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 거죠. 여유가 생긴 지금은 ‘취미 부자’가 돼서 즐겁게 살고 있어요.   

 

 

Q. 어떤 취미인가요?

 

어릴 때 공부하느라 배우다 만 피아노도 다시 시작하고, 그림도 그리고, 옷 만들기도 배우고 있어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여행기, 서평, 영화 감상평 같은 것도 올리고요. 우리 뇌는 기억과 관련된 회로가 망가졌을 때 그걸 만회할 다른 경로를 찾도록 설계돼 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통한 자극을 주어야 해요. 가령 저처럼 평생 책 보고 연구만 한 사람이 독서를 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되고, 그림이나 악기처럼 새로운 걸 배우는 거죠. 제가 ‘늙지 않는 뇌’라는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할 때 자주 하는 얘기예요. 이런 방식으로 회로를 잘 가동시키면 술, 담배, 고혈압, 뇌질환 등으로 손상되지 않는 한 우리 뇌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우리의 뇌는 기억과 관련된 회로가 망가졌을 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찾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그게 가능하려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극을 주어야 하죠.

가령 저처럼 연구를 해오던 사람이라면 독서를 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그림이나 악기처럼 완전히 다른 분야를 배우는 거죠."

 

 

Q. 선배 과학자로서, 과학기술에 관심 많은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과학기술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로운 일을 할 기회가 많고, 전문가로 살아갈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특히 과학의 여러 학문 중 화학은 기초 분야부터 산업계까지 다양하게 일할 기회가 있어요. 수학이나 물리를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들에게는 화학도의 길을 추천합니다.  

 

 

 

여전히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흰 눈이 하얗게 덮인 벌판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서산대사의 선시가 떠올랐다. 

 

뇌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뛰어들어 220편의 논문과 55건의 등록 특허라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그는 그렇게 ‘뒷 사람의 길’이 되었다. 이제 그 길을 따라 걷는 많은 후배들을 위해, 우리나라 융합 연구 활성화를 위해 다시 길을 만들어간다. 그가 이끄는 미래융합전략센터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견인할 혁신적인 기술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